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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고인돌에서 애마총까지" 살아 숨 쉬는 역사박물공원, 성남 분당중앙공원

 

[ 타임즈 - 김시창 기자 ] 도시 개발이 급격히 이루어진 현대의 신도시 속에서 역사 및 자연을 동시에 간직한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복판에 자리한 분당중앙공원은 그 귀중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산책, 휴식의 공간을 넘어 수천 년 전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성남의 유구한 역사와 선조들의 삶의 지혜, 충절과 문화가 오롯이 녹아 있는 특별한 장소다. 분당중앙공원을 거닐면 그 속에서 성남의 뿌리와 정신을 만날 수 있다.

 

분당중앙공원이 자리한 수내동 일대는 본래 한산이씨 가문의 집성촌이었다. 한산 이씨는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을 비롯해 수많은 명문을 배출하며 성남의 역사적 뿌리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목은 이색은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 제과에도 급제해 도첨의찬성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한산이씨는 고려·조선시대를 통틀어 다수의 충신과 문장가, 학자를 배출했다. 토정 이지함은 토정비결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 실학과 민생을 중시하며 백성을 위하는 삶을 살았다. 죽천 이덕형은 선조·인조 때 고위 관직을 두루 지내며 이괄의 난 진압과 병자호란 호종에 공을 세워 충숙공으로 추증되었다. 이러한 한산이씨 가문의 인물들은 성남을 넘어 한국사 전반에서 두드러진 족적을 남겼다.

 

이들이 살던 집성촌의 일부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분당중앙공원 수내동 가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된 이 가옥은 조선 후기 전통 초가 가옥으로 당시 선조들의 삶의 방식과 가옥 구조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집 주변의 연못, 오래된 느티나무, 향나무 등이 오랜 세월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다.

 

 

분당중앙공원의 역사적 상징성을 한층 부각시키는 또 하나의 사연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이경류 선생의 이야기다. 그는 문관임에도 전쟁이 발발하자 병사 부족을 메꾸기 위해 형을 대신해 직접 전장에 나섰다. 경북 상주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그의 충절은 시간이 지나도 시민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그의 말이 보여준 충심이다. 이경류의 애마는 주인의 피 묻은 옷과 유서를 물고 상주에서 수내동까지 500리 길을 내달아와 주인의 전사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울다 지쳐 죽음을 맞았다. 이 아름다운 주인과 말의 의리는 후세에까지 널리 알려져 이경류 묘 아래 애마총이라는 이름으로 말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정조 16년(1792년) 한 선비의 건의로 이경류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비가 세워지며 이 일화는 역사적 사료로도 보전되었다. 오늘날 이 정려비 앞의 아름드리 벚나무 군락은 매년 봄마다 흐드러지는 벚꽃으로 무릉도원을 방불케 한다.

 

 

분당중앙공원의 뿌리는 한산이씨 이전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당신도시 개발 당시 수많은 선사시대 유적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인돌 지석묘군이다. 청동기 시대 정치적, 경제적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알려진 고인돌은 당시에도 이 지역이 이미 삶의 터전으로 풍요로웠음을 보여준다.

 

분당과 도촌, 야탑 일대에서 총 116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으며 이 중 10기가 분당중앙공원 내에 옮겨 보존되어 있다. 공원의 남방식 지석묘들은 선조들이 농경과 공동체 생활을 통해 번성했던 흔적을 지금까지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이는 분당중앙공원이 성남의 오랜 문명사와 선조들의 삶을 고스란히 품은 역사 현장임을 증명한다.

 

분당중앙공원의 매력은 이처럼 역사적 의미만이 아니다. 공원의 중심부에는 분당호수와 돌마각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 경주의 안압지를 본떠 조성된 분당호수는 사계절마다 색다른 풍광을 자랑한다. 봄에는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여름에는 시원한 분수와 오리들이 노니는 풍경이 더위를 식혀준다. 가을에는 느티나무와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며 겨울에는 호수와 돌마각 위로 눈이 내려 장관을 이룬다.

 

 

경복궁 경회루를 축소 재현한 돌마각은 이 공원의 또 다른 명소로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누각이 전통미를 더한다. 여기에 수내정, 물레방아, 구름다리, 약수터 등 소소한 명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방문객들은 산책을 하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난다.

 

이 공원은 성남시민뿐 아니라, 인근 초·중·고 학생들에게도 중요한 역사학습의 현장이다. 책으로 배우던 청동기 시대의 지석묘, 조선 후기의 초가 가옥, 임진왜란의 충신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곳.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교과서 속의 역사가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교육의 장이 바로 이곳이다.

 

 

오늘날 분당중앙공원은 성남 9경 중 제6경으로 선정되어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원의 진정한 가치는 관광 명소로서의 화려함이 아니라 도시의 심장부 속에서도 전통과 역사,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점에 있다.

 

프로필 사진
김시창 기자

타임즈 대표 김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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