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임즈 - 김시창 기자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서울에서 불과 1시간 남짓의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번잡한 도심을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계곡길을 따라가다 보면 울창한 숲과 시원한 물줄기가 이어지는 묘적사계곡의 정취가 서서히 펼쳐진다. 무더운 여름이면 이곳은 더위를 피해 도심을 벗어난 사람들로 북적인다. 또한 계곡 깊숙이 자리한 고요한 묘적사는 계곡과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묘적사는 이름 그대로 ‘묘할 묘(妙)’, ‘고요할 적(寂)’의 뜻을 품고 있다. 산과 계곡의 품에 안긴 이 작은 사찰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 천년의 역사를 품은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다.

이곳 사찰 입구 안내문에는 신라 문무왕 시절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에 얽힌 전설은 더 흥미롭다. 과거 국왕의 비밀기구가 이곳에 설치되어 비밀요원들을 승려로 위장해 양성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이곳에서 경전뿐 아니라 군사훈련까지 익혔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유정대사가 승군을 훈련한 장소로도 사용되었다는 전설은 묘적사의 독특한 역사적 위상을 짐작케 한다.
사찰은 과거 여러 차례의 화재와 폐사, 중건을 겪으며 모습을 달리해 왔다. 조선 전기에는 왕실의 후원으로 중창되며 큰 사찰로 위상을 떨쳤다. 고려 시대에는 고승 지눌이 머물렀던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후 쇠락기를 겪으며 폐사 상태에 이르렀다가 19세기 말 다시 중건되며 지금에 다다랐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로 대웅전, 요사채, 템플스테이 시설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조선 전기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남양주 묘적사 팔각다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하지 않은 팔각다층 석탑으로 옥개석 끝에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남아 있어 당시의 사찰 건축문화를 상상하게 한다. 이 석탑은 201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문화재적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사찰을 둘러본 뒤 계곡으로 발길을 옮기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백봉산과 갈미봉, 수리봉으로 둘러싸인 묘적사계곡은 월문천이 흐르는 깊고 시원한 공간이다. 물은 맑고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다. 여름이면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고 봄과 가을엔 걷기 좋은 탐방로를 따라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계곡을 따라 들어선 음식점들도 많아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의 매력은 번잡함을 벗어난 그 끝에서 비로소 만난다. 계곡 가장 깊숙한 곳, 묘적사에 이르면 다시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 든다. 시원한 바람, 조용한 풍경, 오롯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명상 같은 순간이 이곳에 있다.
묘적사는 현재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하루쯤 이곳에서 묵으며 사찰의 고요함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향운정, 서암당, 명상수련관 같은 시설은 현대인의 쉼표가 되어준다.

서울 근교에서 이토록 깊이 있는 시간과 장소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기이하고 고요한 이름처럼 묘적사와 그 계곡은 우리 일상에 쉼과 경외를 동시에 안겨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번잡한 세상 속 잠시나마 자신을 비우고 싶은 날 남양주 묘적사로 향해보자. 과거와 현재, 고요와 기이함,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그곳에서 한 줄기 평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