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즈 - 김시창 기자 ]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가 발전과 경쟁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한계를 넘어 한국 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호혜와 협동> 3부작을 발간했다. 이 3부작은 ‘호혜와 협동’의 사회적 가치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려면 어떤 움직임이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압축성장 모델이 한계에 봉착하고 청년 실업, 양극화 등 사회문제가 심화되면서 수익 창출과 공공성을 함께 지향하는 ‘사회적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사회연대경제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한 상황에서 <호혜와 협동> 3부작은 사회적경제의 핵심 가치인 호혜와 협동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시의적절한 탐색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3부작은 그간의 연구와 뚜렷한 차별점을 보인다. 대부분의 관련 연구가 서구의 맥락에서 진행된 것과 달리, 이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초점을 맞췄다. 해외 선진 사례를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론과 제도가 한국에서 어떻게 정착되었는지 살폈다.
나아가 호혜와 협동에 대한 한국인의 기저 심리를 설문조사를 통해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개년으로 진행·분석된 이 설문조사의 설문지와 데이터셋은 곧 개방해 학술적으로 널리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시리즈의 첫 권인 『호혜와 협동의 현대적 실천: 이론과 사례 편』은 먼저 호혜 및 협동 관련 이론적 토대를 다진다. 이탈리아 볼로냐, 스페인 바스크 등 해외 선진 사례를 통해 호혜와 협동이 거버넌스와 맺는 관계를 재설정한 뒤, 한국적 현실에 대해 본격적으로 깊이 있게 살펴본다. 특히 한국에서 사회적경제 담론이 확장되고 국가 정책을 통해 법제화되는 경로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대목은 사회적경제 기본법이 재논의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과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마을의 실천공동체, 제주 동백동산, 경기 용인시 느티나무도서관 등 오늘날 한국에서 호혜와 협동이 실천되는 다양한 현장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사회적경제가 두터운 시민사회의 호혜·협동·신뢰·연대 같은 사회적 가치를 통해 아래로부터 형성되기보다는 비록 현실적으로 자원 동원의 효율성과 확산성을 담보하기는 하지만 국가(중앙정부나 지자체), 대기업 등에 의존함으로써 위로부터의 형성이라는 경로를 보이고 있다. 사회적경제가 ‘사회적인 것’의 토대인 ‘시민사회’로부터 비롯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시민사회 주체들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참여와 자원 동원 등) 기존 기업이나 국가 조직의 후원, 연계를 통한 성장, 즉 효율적이지만 의존적인 빠른 성장을 기대함으로써 오히려 스스로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토대를 구축하고 호혜, 협동, 신뢰, 연대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해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호혜와 협동의 현대적 실천: 이론과 사례 편』 - ‘한국 사회적경제 담론의 확산과 법적 제도화’ 中(141쪽)
다음으로 『호혜와 협동의 사회적 연대: 협동조합 편』은 사회적경제의 대표 주체인 ‘협동조합’에 집중한다. UN이 지속 가능한 개발을 강조하면서 2025년 올해를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한 것에서 보듯, 협동조합에 관한 이해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이 책은 협동조합의 다양한 양상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먼저 노동자협동조합, 협동조합 기반 지역 공동체 운동 등 협동조합의 여러 양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60~1990년대 충북 지역의 협동조합 운동사를 발굴한다. 책의 백미는 협동조합의 제도적 혁신인 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한 부분이다. 국제적인 맥락에서 사회적협동조합이 어떻게 등장하여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국내의 맥락으로 옮겨와 사회적협동조합의 법적 제도와 다양한 사례를 면밀하게 검토한다. 국내에서 사회적협동조합이 지역별로 어떤 양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그 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정책 연구자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일반협동조합과 달리 감독을 받는 소관 부처가 있는데, 전국적으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그리고 고용노동부를 소관 부처로 하는 조합이 많았으며, 각 지역에서도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과 연결되어 업종에서도 ‘교육서비스업’이 가장 많았고,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이 그다음을 차지했다. 인구 대비 사회적협동조합의 숫자가 많은 강원과 대전, 숫자가 적은 부산과 전남의 사례를 분석해 본 결과, 업종, 소관 부처, 사업 내용, 사업 구역 등에 따른 지역적 특징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방과후학교 운영, 공동육아 등 주민들이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합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조합들은 지역성을 반영하거나, 지역이 지닌 특성을 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한 조합이 적지 않으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업 내용에서는 지역에 따른 차별성을 찾기 힘들었다. 따라서 지역 내에서 사회적협동조합 간의 협력과 네트워킹보다는 중복된 사업 내용으로 경쟁이 조장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호혜와 협동의 사회적 연대: 협동조합 편』 - ‘한국 사회적협동조합의 지역적 특성’ 中 (255쪽)
마지막으로 『호혜와 협동의 사회심리학: 조사와 분석 편』은 ‘한국인이 호혜와 협동을 어떻게 느끼고 실천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한다. 2018년부터 매년 이어지고 있는 장기 설문조사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국내 최초의 연구서인 이 책은 신뢰, 기부, 이웃, 연대 등에 대한 한국인의 주관적 태도와 심리적 경향을 개인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분석한다. 이를 통해 호혜와 협동을 촉진하는 미시적 메커니즘을 도출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 시스템 구축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앞의 분석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동네와 이웃에 대한 여러 가지 인식을 가장 일관되게 예측하는 변수는 현재 사는 동네에 거주한 기간이다. 이는 이웃효과 연구에서 중요한 변수인데, 주거의 안정성이 연결망을 통해 집합적 효능감에 영향을 미치고 그를 통해 여러 가지 종속변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도 거주 기간은 동네 및 이웃과 관련된 여러 변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특히 현재 동네에 10년 이상 거주한 응답자와 10년 미만 거주한 응답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즉, 동네에서 강한 연결망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고 집합적 효능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주거 안정성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호혜와 협동의 사회심리학: 조사와 분석 편』 - ‘한국인의 동네와 이웃’ 中(146쪽)
이 연구를 기획하고 집필한 연구책임자인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과 교수는 “『호혜와 협동』 3부작은 사회적경제의 가치와 실천을 이론, 제도, 심리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조망함으로써 학술 연구를 넘어 정책 수립과 시민 교육, 현장 실천에까지 폭넓게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며,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집합적 지혜와 실천의 토대를 다진 이번 연구는 한국형 사회적경제 모델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3개년 단위로 기획된 본 연구는 현재도 집필과 현장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향후 축적될 데이터와 사례 분석을 바탕으로 심화와 확장을 거듭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